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사이토 유키(1988) (문단 편집) == 플레이 스타일 == 기본적으로 최고구속 150km/h, 평속 140km/h정도의 포심을 가지고 있으며 일본 투수라면 거의 누구나 다 던지는 포크볼을 비롯해 슬라이더, 투심, 드물게 커터까지 실전용으로 사용하며 체인지업과 커브도 던질 줄 아는 팔색조. 제구력도 좋은 편이며 체력도 좋아 고등학교 땐 저 살인적인 스케쥴을 고등학생 몸으로 견뎠을 정도이고 프로에 와서도 많게는 150개씩 던져도 평속이 140밑으로 잘 내려가지 않는 이닝이팅 능력도 있다. 고3때는 도대회 결승전에서 200개를 넘게 던지고도 149km/h를 찍었을 정도. 또한 수싸움에 능한편이라 상황에 맞춰서 구질등을 능수능란하게 조절하는 등, 심리전에 강한 것이 고교와 대학시절의 높은 탈삼진 및 좋은 성적의 비밀이었다. 여기까지만 쓰면 왜 부진한지 알 수 없을 정도지만 사이토의 문제는 구위에 있다. 체격이 작은 편이고 호리호리한 인상에서 알 수 있듯이 몸무게도 적다. 여기에 런닝도 잘 하지 않는 편이라, 공이 깃털같다. 찍히면 바로 홈런. 게다가 공 끝이 깨끗해 가볍고 작대기같은 포심을 던지며 변화구도 종류는 많지만 변화량이 적어 던질 줄만 알았지 위력은 대단하지 않다. 선발등판시 140km/h초반인 포심도 150km/h은 물론이고 160km/h도 종종 나오는 프로리그에선 엄청 빠른 편이 아니다. 그렇다보니 2012년에는 포심 헛스윙률이 1군에서 가장 낮은 수준인 2퍼센트였다. 결국 포심이 작대기라 타자를 현혹시킬 수 없다 보니 스트라이크를 잡기 어려워 탈삼진이 어렵고, 그렇다보니 잡아내는 아웃카운트는 커터나 슬라이더를 이용한 땅볼아웃이 대부분으로 대학때까지만 해도 탈삼진형 투수였으나 프로에서는 의도치 않게 땅볼투수가 되었다. 대학과 프로의 수준차를 여실히 보여주는 부분. 변화구는 좋은가 하면 그런 것도 아니다. 그나마 슬라이더는 좀 긁히는 날에는 긁혀서 뜬금없이 1년에 한번정도 선발승을 거두는지라 구단과 팬들을 희망고문하지만, 피장타율을 보면 알듯이 안 긁히는 날이 더 많다. 나머지 변화구는 말할 가치가 없는 수준. 프로 초창기엔 그러든 말든 어린 패기로 겁없이 던져서 어쨌든 구속만은 빠른 속구와 다양한 변화구, 그리고 신인답지 않은 수싸움에 능한 점이 시너지를 일으켜 그럭저럭 신인치고 뛰어난 성적을 냈지만 관절와순 부상 이후로는 본인도 자기 공이 예전같지 않다는 것을 아는지 피장타를 겁내 바깥쪽으로 도망치는 식의 투구를 하다 보니 제구력이 좋아도 결과적으론 볼넷이 많아져 볼삼비는 현기증나는 수준. 바깥쪽으로 도망다니다가 피장타 아니면 볼넷의 패턴이라 그나마 사이토가 땜빵선발로 1년에 몇 번 1군에서 얼굴을 볼 수 있게 해 주는 원동력인 이닝소화능력도 떨어져가는 판이다. 매년 퇴화한다는 말이 알맞을 듯. 워크에식도 별로 좋지 않은 편으로 일본 내에서도 태만하고 놀기 좋아하는 선수로 한때 유명했다. 여자랑 스캔들이 끊이지 않았던 것도 반대로 생각해보면 그만큼 허비하는 시간이 많았다는 이야기. 사이토처럼 구위가 문제일 경우 웨이트나 런닝으로 구위를 어느정도 증강시킬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웨이트나 런닝을 잘 하지 않는 선수로 알려져 있다. 웨이트야 일본 전통적인 투수관에 의해 안하는 투수도 많다지만 런닝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대학시절 이치로가 같이 훈련을 하고서는 런닝을 왜 하지 않느냐고 일침을 놓은 것은 유명한 일화. 20대 후반에 등번호까지 반납한 현재는 이대로라면 밥숫갈 놔야겠다는 위기의식이 좀 생겼는지 자비로 전지훈련을 가는 정도까지 노력하는 모양이지만 2017년 TV의 훈련과정 취재에서도 웨이트는 안 하고 애꿎은 투구폼만 계속 만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본인이 무엇이 문제인지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답답할 지경. [* 다만 매년 오프시즌마다 훈련 현황 공개하는걸 보면 웨이트는 꾸준히 한건지 몸은 확실히 좋아졌다. 문제는 그게 구위 상승으로까지 이어지지 않아서 투구폼에 문제가 있는건 맞는듯 하다.] 정확히는 투구폼이 문제이긴 하다. 이는 프로 지명 받기 전부터 지적받던 문제로, 특히 [[노무라 카츠야]] 전 라쿠텐 감독이 대놓고 깐거긴 한데 공던질때 하반신을 안쓰고 어깨로만 던진다는 것. 이게 문제가 뭐냐면 위에 언급된대로 사이토는 체격이 왜소한편이다. 즉 하반신을 이용해서 체중을 확실하게 실어주지 않으면 구위가 안나올 수 밖에 없는 체격이라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폼이 문제라는걸 뒤늦게 깨달은 건 좋은데 하반신 강화 없이 폼만 만져봐야 큰 효과를 얻을 수 없다. 결국 고칠게 두가지인데 하나만 고치고 나머지 문제점은 눈 감아버리는 상황. 즉 이미 고교시절 아마야구 수준은 뛰어넘었기에 자기 수준에 맞는 높은 무대로 올라가 배워야 할 타이밍에 대학에서 4년을 놀며 성장이 정체+일본 아마야구 특유의 혹사+본인의 태만이 합쳐져 완벽히 망가져버린 유망주. 다만 사이토가 혹사 및 부상이 없었다고 해도 에이스급 투수로 성장했을까 라는 의견에 대해서는 대부분 회의적이다. 애초에 고등학생 시절에도 평가는 라이벌이라 불리던 타나카가 훨씬 높았다. 이유는 사이토는 그 시점에서 이미 완성형, 즉 본인의 포텐셜이 이미 만개한 상태였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였다. 그러니 프로에 입단했어도 아마 현상유지는 가능하겠지만 더 성장할 가능성은 적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위에도 언급 되어 있지만 [[노무라 카츠야]] 감독의 경우 사이토 인기가 절정이었던 대학 시절에도 '문제가 많아서 이대로라면 프로에서 통하지 않을 투수'라고 신랄하게 비판했었다. 그리고 그 해 드래프트에서도 사실 지명도에 비해서 꽤 박한 평가를 받았는데, 사이토가 4구단 경합이라는 사실에 가려지는 사실이지만 실은 당 해 드래프트 최대어는 사이토가 아니라 같은 와세다 대학 동기이자 고교시절에는 완전 무명이었던 오이시 타츠야였다. 인기와 지명도에서 한참 밀리던 오이시가 오히려 6개 구단이 지명경합을 벌이면서 사이토는 실제보다 고평가받고 있다는 것이 냉정한 야구전문가들의 평가였다.[[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가 뽑으니가 최대어처럼 보였던 느낌도 있다.[* 이 팀은 앞뒤안보고 그 해 최대어만 뽑는다. 닛폰햄에서 자기 뽑으면 입단을 거부하겠다고 미리 공언해둔 선수라도 뽑는다. 이 덕분에 최근 몇 년 간 두 번이나 입단거부를 당했다.][* 근데 그 오이시는 2019년을 끝으로 방출당해 은퇴. 통산 기록을 보면 사이토보다도 안 좋았다 결론적으로는 그나마 사이토가 조금 더 프로에서 길게 살아남았다는 것. 이 해의 1라운더 잔혹사가 유독 심했다. 스다 코타, [[이시미네 쇼타]], 고토 슌타, 야마시타 아야츠구 등 1라운더들이 줄줄이 망해버렸으니. 그 외에도 시오미 타카히로, 후쿠이 유야(사이토, 오이시와 와세다 동기였으나 재수해서 들어와서 1살 많았다. 즉 와세다 선발 트리오가 모두 1라운드 지명을 받았다는 것이다.)등도 완전히 망하지는 않았지만 기대치보다 못한 모습을 보였다. 이 해의 1라운더는 기복이 심해서 몇 년 정도만 잘하고 나머지는 망한 [[에노키다 다이키]] 정도만 해도 괜찮은 결과였다. 물론 [[오노 유다이(야구선수)|오노 유다이]], [[사와무라 히로카즈]], [[야마다 테츠토]]처럼 성공한 픽도 있지만.] 밑에 언급되듯이 당시 사이토 유키는 평범하게 야구만 잘하는 아마추어 대학생이 아니라 어떤 프로선수보다 상품성이 높은, 다시말해 드래프트에서 뽑기만 하면 돈보따리가 보장되는 선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4구단 경합이라는 건 인기에 비하면 생각보다 선수로서 평가는 박했다는 뜻이다. 특히 오이시 타츠야말고도 2010 드래프트에서 투수로서 스카우트 평가는 대학에서 최고구속 157km를 기록하고 최우수투수상을 받은 [[사와무라 히로카즈]]가 사이토 유키보다 훨씬 더 높았다. 단지 사와무라는 메이저리그의 여러 구단에서도 오퍼가 왔기 때문에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지명 안되면 계약안하고 메이저간다고 엄포를 놓아서 요미우리만 지명한 것 뿐이다. 물론 좋게 보는 측도 한계가 명확해 애초에 프런트라인 에이스급으로 성장할 것까지는 기대 안 했다. 기본적으로 BQ가 뛰어난 선수라서 좋게 보는 측은 대략 하위선발 정도까지의 실링을 기대했었고, 그만큼 못 크더라도 불펜이라도 좋으니 어쨌든 1군 한자리 먹고 꾸준히 TV에 얼굴 비춰줄 급만 되면 그 엄청난 스타성으로 상품과 입장권 판매로 구단에 막대한 돈을 벌어다 줄 것이 뻔히 보였기 때문에 그렇게 많은 구단들이 달려들었던 것. 그리고 이는 절대 무리한 기대는 아니었던 것이, 실제로 입단 1~2년차까지는 하위선발로서 그럭저럭 가능성을 보였고 아무리 보수적으로 봐도 1군 불펜 한자리 정도는 먹을 수 있는 정도의 실링은 지닌 선수였다. 3년차의 관절와순 부상이 모든 것을 망쳐놓았을 뿐. 실제로 2020년 8월자 기사에 따르면 입단 3~4년째까지는 사이토 선발경기는 거의 전경기 만원에 상품도 대량으로 팔려 여태까지 사이토가 벌어온 돈이 10억엔 이상이라고 하니 닛폰햄으로서는 그야말로 대박 친 셈. 닛폰햄이 사이토에 투자한 연봉과 계약금은 3억엔이 채 안 된다. 실제로 이젠 평속이 140이 안나오고 볼넷도 많은, 나이많은 2군 붙박이 선수임에도 방출은 커녕 1년에 몇 번이라도 1군 기회를 얻는것은 이런 구단 경영에 대공헌을 한 선수인데다 10년이 지난 현재도 2군전에 사이토를 보러 오는 아줌마들이 있고 물건이 소소히 팔리기 때문. 닛폰햄은 구단 차원에서 2군 마케팅에도 힘을 실어주는 구단이기 때문에 이런 2군 얼굴마담이 있으면 사업에 도움이 된다. 이렇듯 야구 외적으로 확실히 1차지명 값을 톡톡히 하긴 했다. ||<-5> NPB 통산 성적 || || 년도 || 승-패 || 이닝 || 방어율 || 탈삼진 || || 2011 || 6-6 || 107 || 2.69 || 62 || || 2012 || 5-8 || 104 || 3.98 || 59 || || 2013 || 0-1 || 4 || 13.50 || 1 || || 2014 || 2-1 || 26 || 4.85 || 20 || || 2015 || 1-3 || 42.1 || 5.74 || 24 || || 2016 || 0-1 || 23.2 || 4.56 || 14 || || 2017 || 1-3 || 28 || 6.75 || 14 || || 2018 || 0-1 || 8.2 || 7.27 || 3 || || 2019 || 0-2 || 21 || 4.71 || 12 || || 2020 ||<-4> 1군 기록 없음 || || 계 || 15-26 || 364.2 || 4.24 || 209 || [각주] [include(틀:문서 가져옴,title=사이토 유키,version=146)] [[분류:일본의 야구 선수]][[분류:1988년 출생]][[분류:오타시 출신 인물]][[분류:와세다 실업학교 고등부 출신]][[분류:와세다대학 출신]][[분류: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은퇴, 이적]][[분류:2011년 데뷔]][[분류:2021년 은퇴]][[분류:우투우타]][[분류:우완 투수]]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